전주 숲정이

 

 

 흙에 밴 신앙의 흔적  

 

소 재 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1144-1

지리좌표

기념 비석 앞 북위 35°49′32″ 동경 127°08′02″

문 의 처

전주 교구 교구청 홍보국 ☏

 

교의 땅 전주 지역에는 전동 성당, 풍남문, 치명자산(일명 중바위), 서천교, 초록 바위, 여산 순교 성지 등 곳곳에 순교자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숲정이'는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숲머리'라고도 하고 군 지휘소인 장대(將臺)가 있던 곳으로 조선 시대부터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1801년 12월 28일 유항검의 처 신희, 제수 이육희, 자부 이순이(루갈다), 조카 유중성(마태오) 등 유항검의 가족이 처음 참수되면서부터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았다. 호남 고속 국도를 타고 전주 톨게이트로 빠져 나와 직선으로 뻗은 팔달로를 타거나 천변로를 타고 진북 초등 학교를 찾아가면 바로 앞에 숲정이가 나온다. 고속 버스를 이용한 순례자들은 터미널에서 택시로 구(舊) 해성 고등 학교로 가자면 기본 요금 정도로 숲정이에 갈 수 있다.

 

지방 문화재 제71호로 지정돼 있는 숲정이는 아프트 공사로 인해 원래 위치에서 1백50여 미터 떨어져 자리해 있는데 성지에서 옮겨 온 토사로 조경이 돼 있고 안내 표지판과 십자가 그리고 순교자 현양탑이 우뚝 서서 순교의 영광을 기리고 있다.

숲정이는 일찍이 유항검 일가가 순교한 이래 1839년의 기해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 때에도 수많은 신앙인들의 유혈이 있었다.

1839년 5월 29일에는 1827년(정해년)에 체포돼 13년간 옥고를 치른 신대보(베드로), 이대권(베드로), 이일언(욥), 정태봉(바오로), 김태권 등 5명이 참수됐다.

1866년 12월 13일에는 소양면 신리골의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재권(요셉)과 성지동의 조화서(베드로),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등 여섯 분이 치명했는데 이들은 모두 1984년 5월 6일에 성인품에 올랐다.

1867년에는 김사집(필립보)을 비롯한 수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치명하기도 했다.

말 한마디로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었건만 이처럼 많은 교우들은 초개와 같이 세상을 버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순교자는 한국 순교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동정 부부이다.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며느리이기도 한 이 루갈다는 조선 왕조 태종의 14대손으로서 지봉 이수광의 8대손인 이윤하와 권일신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터운 신앙의 가계에서 자란 그는 성모 마리아를 닮아 평생 동정이기를 결심하지만 이는 당시의 풍속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루갈다의 결심을 알고 있어던 주문모 신부는 호남 전교길에 유항검의 집에 머물다가 그의 장남 중철이 역시 동정으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혼사를 주선,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와 같은 동정 부부의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후 4년 동안 오로지 천주의 정배가 되리라는 의지로 정결한 생활을 해 온 이들 부부는 마침내 신유박해를 만나고 순교의 영광을 입게 된다.

전주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한 중철 요한의 처 이 루갈다가 20세의 꽃다운 나이로 참수되기 직전 옥중에서 친정으로 보낸 편지는 그대로 전해져 한국 천주교회사의 귀중한 보물로 여겨진다. 옥중에서 옥리의 눈을 피해 그의 여동생과 올케에게 쓴 조각 조각이 어느 교우집에 곱게 간직돼 내려와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전문이 소개됐는데 그 구절구절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우리는 다 같이 천주를 위하여 순교자가 되기를 맹세하고 철석같이 굳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나의 애정은 다른 감옥에 갇힌 남편 요한에게로 끊임없이 달려만 갔습니다. 10월 9일 나의 시동생이 끌려 나갔습니다. 얼마 후에 남편과 그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순교의 영광을 택한다.

"고문이 시작되자 나는 천주를 믿음으로써 목숨을 바치겠다고 확실히 말했습니다. 형리는 나의 정강이를 때리고 수갑을 채워 옥에 가두었습니다. 내가 순교자가 된다면 모든 나의 죄는 없어지고 천 배나 만 배나 되는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복(福) 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들 부부의 무덤은 지금 전주 시내 어디서나 잘 바라다보이는 교동(校洞)의 치명자산, 시민들은 중바위( 山)라고 부르는 산머리 양지바른 자리에 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낮이나 밤이나' 기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찾아가는 길

 

전주시 한복판 금암 광장에서 태평로 쪽으로 1km쯤 가면 연초 제조창이 있는 네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우회전하여 300m쯤 가면 길 오른쪽에 전주 숲정이가 있다. 진북 초등 학교를 찾으면 쉽게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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